공포의 핏물 길..

    91년 6월의 강원도 정선

    이제 슬슬 더워지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내 친구는 동네 친구들과

    논두렁에서 메뚜기도 잡고 놀고 있었다.

    신나게 뛰놀면서 논두렁을 달리다 보니 어느새 집에서 많이 멀어져 있었다.

    그래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멀리서 경운기 한 대가 오고 있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오토바이가 귀해서 동네에서 경운기가 주요 운송수단이었고

    멀리 나갈 때는 봉고나 지무시(GMC)를 타고 나갔다.

    그래서 경운기를 운전하는 할배 뒤에 몰래 타는 게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동네 근처까지 타고 갈려고 논두렁을 기어올라갔다.

    경운기가 지나가면 올라타려고 오기 전까지 딴짓을 하고 있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경운기가 가까이 올수록 더 자세히 보이기 시작했는데

    경운기가 오면서 웬 빨간 물을 잔뜩 흘리면서 오는데

    짐칸 오른쪽에 웬 손 하나가 빠져나와 있는 게 보였다.

    ‘누가 누워서 자는 건가?’ 하고 생각하면서 경운기를 보는데

    피투성이가 된 포대기 안에 팔과 다리가 삐져나와 있던 것이었다.

    경운기가 아이들을 지나치면서 자세히 보게 되었는데

    핏빛 보라색으로 물든 불어터진 팔에서 피가 계속 흘러나왔다.

    포대 안에 시체를 넣었는데 시체가 덩치가 커서 포대 밖으로

    손발이 삐져나온 것이었다.

    얼굴을 슬쩍 봤는데 진짜 어디서도 다시 볼 수 없었던 보라색으로

    불어터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시체가 피범벅에 온 몸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피로 흥건해진 경운기 짐칸에서 계속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경운기가 오던 길을 봤는데 저 멀리부터 피로 길을 물들였다.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시골에서 아재드링 술 마시고 피투성이가 돼서

    싸우거나 기물을 파손하는 경우가 많아서 피에 많이 익숙해 있었지만

    그 광경은 지금까지도 난생처음 보는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삐져나온 팔다리에서도 계속 피가 흘러나왔으며 포대 안에서도

    경운기가 출렁거리면서 고여있던 피가 밖으로 흘러나왔다.

    우리를 지나친 경운기가 가는 길 따라서 핏물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사연은 이랬다.

    동네에서 유명한 뱀꾼이 있었는데 이 양반이 30년 가까이 된 경력 있는 양반이었다.

    이 양반 집에 가면 항아리가 여러 개 있는데 뚜껑을 열어보면 수백 마리의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지옥과 같은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진짜 뱀에 관해서는 박사 같은 존재였고 뱀도 개처럼 뱀꾼을 알아봐서

    이 양반이 가까이 오면 모든 걸 포기하고 고개를 돌린다고 한다.

    그날도 뱀을 잡으러 친구인 다른 뱀꾼과 산을 돌아다니면서 사냥을 하고 있었다.

    점심 때 밥 먹고 잠깐 쉬려고 나무 옆에 앉아서 도시락을 여는데

    경력 30년의 뱀꾼이 까치 독사가 옆에 있는 줄도 모르고 자리를 핀 것이었다.

    꽈리를 틀고 있다가 갑작스레 공격을 당한 까치 독사가

    눈깔이 돌아서 뱀꾼이고 나발이고 바로 물어버렸다.

    뱀꾼이 처음에는 놀랬는데 자신을 문 것이 까치 독사라는 것을 알고

    너무 화가 나서 뱀을 바닥에 패대기 쳐버렸다.

    그러나 까치 독사는 굴하지 않고 다시 달려들어서 온 몸을 물어댔다.

    혼자서 까치 독사하고 뒹굴면서 격투를 벌이는데 오히려 물리기만 더 물려서

    피부가 보라색으로 변색되면서 온 몸이 부어터지기 시작했다.

    같이 있던 뱀꾼은 놀래서 바로 마을에 사람들을 부르러 달려갔다.

    혼자 남은 뱀꾼은 까치 독사랑 10분을 싸우면서 계속 물리고

    피를 흘려서 결국 독사를 죽였지만 그 옆에 주저 앉았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을 부르러 갔던 뱀꾼과 마을 사람들이 올라왔을 때만 하더라도

    살아있어서 뱀과 싸운 상황을 설명하고 고통스러워했는데

    산을 내려가려고 들 것에 실었는데 바로 죽어버렸다고 한다.

    30분 동안 달리다시피 해서 뱀꾼을 들 것에 싣고 내려왔는데

    시신이 보라색으로 부풀어올라서 얼굴형태도 못 알아볼 수준이 되었다.

    불어터진 시체에서 계속 피가 흘러나와서 마대에 시신을 담아서

    보건소로 가져가기로 했는데 집안 대대로 장사 체질인 뱀꾼이라

    큰 덩치에 키가 190이 넘어서 시체를 마대자루에 넣었지만

    팔다리가 마대를 뚫고 나와버렸다.

    가뜩이나 흔들리는 경운기에 마대자루까지 뚫리다보니

    죽은 뱀꾼의 피가 바닥에 흘러내려 논두렁을 피바다길로 만들었던 것이다.

    덕분에 내 친구는 그 누구도 쉽게 경험하지 못 할 죽음의 핏길을

    어린 나이에 경험하게 된 것이었다.

    90년대 초반만 하더라고 강원도는 동네에서 트럭이 귀하고

    기름값이 비싸서 부자가 아니고서야 한번 끌고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근처에 병원이 2~3시간 걸리고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119가 지금 같이 빠르게 출동하지 못해서 읍내 보건소 말고는

    의료 활동이 불가능했다.

    산모들은 타이밍을 놓치면 집에서 애를 받아야 하기에

    죽는 산모도 많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