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혐) 실제 국과수에서 일했던 실화 이야기

    첫번째

    1980년, 시국이 어수선 할 때 우리나라의 명산 중 하나인

    치악산에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40대 한 남성이 등산을 하던 것으로 추정 된 모습으로 토막살해를 당한 것이다.

    이 당시에는 토막살인이라는 것이 거의 드문 일이였고,

    너무나도 시체가 훼손되어 있는 모습이 잔혹해서 언론에 공개도 못한 채

    비밀리에 수사가 시작되었다.

    이윽고 , 국과수에 시체가 옮겨지고 살해 도구를 찾는데에 혈안이 되었지만

    결국 적당한 도구를 예상도 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토막난 면이 너무나도 부드러웠기 때문이다.

    SF영화에나 나오는 레이저 빔 같은것이 아주 부드럽게 절단된 것처럼 토막된 면의 정교함과

    부드러움이 그 당시의 국과수에서는 예측 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근데 문제는 이 시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니라는 점과

    첫 시체가 발견된 후 7일에 한 번 꼴로 치악산 근처에 똑같이 18토막 난 시체가 발견 된 것이다.

    결국 1달 동안 10구의 시체가 발견됐고, 이 시체들 모두 한치의 오차도 없이 18토막을

    부위별로 정확하게 나눈 것이다. 노련한 국과수 위원들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엇으로 이렇게 정확하고 깔끔하게

    토막을 낼 수 있단 말인가?”

    사실 누가 이런 미친 짓을 했느냐가 중요한게아니라 무엇으로 절단했느냐가 더 화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단면을 보일 도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단 것이다.

    “외계인이라도 와서 그런걸까?”

    두번째

    1986년, 모 대학의 어느 과 학생 20명이 경기도의 가평군에 위치한 대성리로 MT를 갔습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남자 14명과 여자 6명으로 구성 된 이 과의 학생들은 대성리의 한 민박집에

    방2개를 잡고 1박2일 일정으로 MT를 갔습니다.

    이 민박집은 방이 10여개로 사건 당시 주인 부부와 자녀 2명 이외에 숙박 손님은 없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도 역시 민박집 식구 외에는 별다른 용의자가 없었던거죠.

    사건은 20명의 학생들이 밤새 술을 마시고, 기타치며 노래를 부르고 새벽 내내 놀았다는 것인데

    그 중에는 이미 술에 취해 먼저 잠이 든 사람도 있고,

    끝까지 버틴 사람도 잇었다는 것이 일반적 추론 입니다.

    역시 증인, 알리바이를 추궁할 대상이 전무후무한 것입니다.

    과 학생들이 MT를 온 첫날과 둘째날 점심(정오 쯤) 때에 민박집 아주머니가 문을 열자

    매캐한 암모니아 냄새가 가득했고, 20명의 학생이 전부 한 방에 널브러져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현장을 가장 먼저 목격한 아주머니의 증언이였습니다.

    국과수로 사체를 넘겨 전원 부검을 시행했지만 역시나 사인을 명확하게 찾지를 못했습니다.

    납중독, 청산가리, 카드뮴, 암모니아와 나프탈렌 정도의 물질 등이 부검 결과 나왔습니다.

    외부엔 상처나 싸운 흔적 등은 전혀 없었습니다.

    현장에 있었던 그들이 먹었던 건 소주와 막걸리인데, 모두 검사해 본 결과 아무런 의심할 만한 흔적이 나오질 못했다고 합니다.

    막걸리는 동네 슈퍼에서 구매한 걸로 확인됬고, 막걸리 공장까지 수사한 결과 이렇다 할 증거는 없었습니다.

    일단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민박집 가족을 심문했지만

    역시나 그들을 음독시킬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인 자녀도 마찬가지였죠.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화학 물질이 결합해 인류가 발견하지 못한 치명적인 독소가 생성된건 아닐까란 의문도 잇었지만

    의문자체가 수사해결에는 전혀 도움되진 않았습니다.

    아마도 경찰은 자살로 마무리 한 것으로 기억하지만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위 사건 역시 뚜렷한 동기와 원인을 찾지 못한 케이스 입니다.

    이 분이 기억하신 물질은 저 정도인데, 몇가지 더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합니다.

    워낙 수많은 사람이 죽은 사건이라 좀 충격적이였던 것으로 기억을 마무리 하셨습니다.

    세번째

    본 이야기는 1981년 서울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부터 시작됩니다.

    한국 현대사에 1981년은 많은의미를 가진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야기를떠나 번외의 이야기지만 오죽하면 1981년도 백원짜리 동전도 전무후무 하니까요.

    이 어수선한 시기에 지금도 믿기 힘든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혹자는 거짓말, 또는 과장이라는 말로 애써 외면할지 모르겠지만 30년 시간이 흐름에도

    기억은 생생하고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한 외제차와 대중교통 버스가 지금의 전농초등학교 (구 동대문여상과 구 경찰병원의 사이)앞에서

    정면 충돌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버스는 운전사를 포함해 경미한 부상을 입은 손님이 몇명만 있었고,

    외제차에 혼자 탑승했던 30대의 한 여인은 즉사했습니다.

    근데 이 사고는 재빠르게 수사가 진행이 되었는데,

    가장 놀라운 것은 사고 당일 바로 국과수에 부검이 요청 된 것이다.

    신원 확인도 안한 채 바로 부검에 들어갔는데, 지금 생각하면 절때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이 사건에서는 시작부터 발생했던것입니다.

    직접사망 원인은 충돌로 인해 핸들이 파손되며 운전자 가슴에 정면으로 박혔고,

    갈비뼈가 부서지며 심장에 강한 충격으로 준 심장 쇼크사로 판명 되었습니다.

    그 당시 국과수 의견은 보통 교통사고로 사망되는 가장 보편적인 내용이였기에

    다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다만 왜 신원도 파악되지 않은 사망자를 빠른 시간에 부검을 했는지가 궁금했을 뿐입니다.

    30대 이 여인은 미모의 여성은 아니지만 긴 머리에 피골이 상접해 보일 정도로 깡마른 체형의 여자였다.

    소지품에 대한 정보는 없기에 이 이야기는 생략하고, 문제는 부검 후 사망 결과를 확정 지은 후에 벌어졌다.

    심장을 절개하고 부서진 갈비뼈와 심장 상태를 파악한 후인데,

    별안간 이 여자가 수술대 위에서 벌떡 일어선 것이다.

    그 당시 부검에 참여했던 이분 이외에 세사람은 아무도 움직일 수 없었다.

    1981년도가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이런 믿기 어려운 광경에 네 사람은 그자리에 멈춰섰다가 주저앉고 말았다.

    현대 의학으로 심장은 멈췄고 , 분명히 여인은 사망했다.

    아니 이미 흉부를 절개해 모든 내장을 들어낸 상태인데 가능한 이야기일까?

    이건 악몽일 것이다.

    그러나 수술대 위에서 벌떡 일어난 여자는 네 사람을 하나하나 둘러보기까지 했다.

    아직도 생생한 그 얼굴에, 목각 인형을 깎아놓은 듯한 뼈 구조가 적나라하게 보였고,

    얼굴에 비해 큰 눈동자는 죽은 동태 눈알처럼 초점 없이 이리저리 회전 운동을 반복했다.

    그런데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여자의 행동이였다.

    자신의 내부 기관으로 손가락을 넣더니 무언가를 찾듯 이리저리 들쑤시고 있었다.

    가슴은 절개된채 표피와 갈비뼈는 고스란히 노출 된 상태에

    손가락은 내부기관을 헤집고 있었다.

    부검실엔 단 하나의 소리만 들려왔다.

    푹-

    퍽-푹-퍽-퍽-푹-퍽-퍽-푹-퍽-

    퍽-푹-퍽-퍽-푹-퍽-

    퍽-푹-퍽-퍽-푹-퍽-퍽-푹-퍽-퍽-푹-퍽-

    뭔가 질퍽거리는 진흙 속에 나무를 넣어 휘젓는 소리같았다.

    그 질퍽거리는 소리는 부검실 전 공간을 뒤흔들었다.

    여자는 마음대로 잘 안됐는지 두다리를 더 벌린 후 후비기 시작했다.

    1분정도 흘렀을 때 쯤, 여자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결국 무언가 끄집어 내고 기절, 아니 다시 죽었다.

    국과수 위언들은 바로 이 믿을 수 없는 사태를 수습하고 보고를 서둘렀다.

    이 여성이 꺼낸 그것은 핏덩어리인지 뭔지 모를 검붉은 덩어리 같은 것이 여자의 손에 쥐어졌고,

    숨도 못셨던 네 사람은 이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그여자에게 다가갔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사이즈는 보통 지우개 만했고,

    재질은 금을 녹여만든 상자였다.

    보통 담배 크기의 4분의1만한 크기로 그것은 분명 순금이였다.

    여자의 손에서 그 함을 집어들고 보니 말 그대로 직육면체의 덩어리에 불과했고,

    어디서 지시가 떨어졌는지 그 여자는 몇분 안돼서 바로 어디론가 옮겨졌다.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당시 소문에 의하면 그 함을 녹여보니 다이아몬드가 있었다는 설이 나돌기도 했다.

    35년간이 생활을 하며 나는 절때 잊을 수 없는 일을 겪었고,

    지금도 그 여자의 눈동자와 그것을 끄집어낼 때 낫떤 소리마저도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