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름돋는 레드 크리스마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Y 아파트 단지 어느 모퉁이에서 새벽송을 돌고 있는 학생들의

    숨죽인 찬송가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자동차며 가로수며 모두 새하얀 솜 이불을 덮어쓰고

    조용하게 잠들어 있었다. 형형색색의 크리스마스 트리로 반짝이는 건물들 위로

    청명한 밤하늘에는 북극성이 2천년 전 동방박사에게 예수의 탄생을 알리던

    그 별인양 유난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Y아파트 10층에 사는 12살짜리 동훈이는 자기 방에서 세상 모르고

    쌕쌕 코를 골며 잠이 들어있었다.

    베개 머리맡에는 욕심 껏 고른 커다란 양말이 놓여있었다.

    스윽.

    동훈의 머리 위로 어두운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림자의 주인공은 빨간 모자와 빨간 외투.

    빨간 장화 차람의 산타클로스였다.

    눈만 빼꼼 내놓고 얼굴을 절반 이상 가린 희고 곱슬곱슬한

    수염이 마치 솜사탕 같아 보였다.

    그의 한쪽 손에는 커다란 선물 보따리가 들려있었다.

    “K 고등학교 5학년 신동훈.

    너는 올 한 해 동안 공부도 항상 반에서 일등이었고

    부모님 말씀도 잘 들었더구나”

    산타클로스는 매서운 추위에 굳어버린 다리를 퉁퉁

    두드리며 동훈의 머리맡에 털썩 주저 앉았다.

    “뿐만 아니라 무거운 짐을 지고 아파트 계단을 올라가시는

    이웃집 할머니를 도와드린 적도 있고 지하철 거지한테 네 하루 용돈인

    500원을 선뜻 내준 적도 있었지. 이 산타 할아버지는 뭐든지

    보고 알고 있단다..흘흘흘…”

    산타클로스는 품 안을 뒤져 디스를 한 개피 꺼내 불을 붙였다.

    후우…허공으로 뿜어져나간 연기가 잠시 동심원의 모양을 유지하더니 이내 흩어졌다.

    “하지만 모든 어린아이가 그렇듯이 너도 항상 착한 일만 했던 것은 아니었지.

    100원짜리 병아리를 사다가 옥상에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저 재미삼아 떨어뜨려

    죽이기도 했고 엄마 주머니를 몰래 뒤져 게임방에 가기도 했었어.”

    산타클로스의 두 눈이 촉촉이 젖어들었다.

    “하지만 그 중 가장 지독했던 것은 길을 잃고 놀이터를 방황하던

    강아지를 잡아서 괴롭혔던 일이야. 피부병에 걸려서 코가 빨갛게 부어오른

    그 강아지를 동훈이 너는 어떻게 했지? 루돌프락고 놀리며 문방구에서 화약을 사다가

    콧구멍에 박고 불을 붙이지 않았니? 그걸로도 모자라 호치키스로 강아지의 두 눈을…

    아, 그 어린 것을..찝어버렸지. 마지막엔 학교 친구들과 함께 학교 앞 굴다리 밑에서 휘발유를

    뿌리고 산 채로 불에 태워버렸고 말이야. 그건 아주 몹쓸 짓이었단다.”

    스윽.

    산타클로스가 빨간 장갑을 낀 손으로 눈가를 닦았다.

    눈가에 붉은 물감이 번졌다.

    “어쨌든, 오늘은 크리스마스다. 약간의 잘못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 장난은 개구쟁이 땐 누구나 한 번 쯤은 하는 것들이지.

    이 산타 할애비는 너에게 선물을 주고 이만 가봐야 할 것 같구나.

    아직 가봐야 할 집이 많거든.”

    산타클로스는 동훈의 양말위로 건담변신로봇세트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메리크리스마스. 주님의 은총이 함께하기를.”

    산타클로스는 조용히 방문을 열고 빠져나갔다.

    그가 내딛은 자리에는 붉은색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뉴스 속보입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였던 지난 새벽 1시 30분경

    Y 아파트 단지에서 끔찍한 대규모 살인사건이 일어났습니다.

    CCTV에 잡힌 화면에 의하면 흰색 산타클로스 복장의 한 괴한이

    일반 가정집에 침입하여 일가족을 칼로 잔인하게 난도질하여 살해했습니다.

    피해 가구 수는 같은 Y아파트 단지 내 4가구에 이르고 모두 자녀가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며 친하게 지내는 집으로 알려졌습니다.

    사망자 수는 총 12명에 이르지만 이상하게도 학생들은 한 명도 죽거나 다치치 않았고

    심지어 범인은 학생들의 머리맡에 선물을 하나씩 두고 갔다고 합니다.

    경찰은 아파트 맞은 동에 12층에 살았던 A씨를 유력 용의자로 보고 긴급수배령을 내렸습니다.

    자녀들에게 버림받고 5년째 홀로 살고 있는 독거노인인 A씨는 현재 도주 중이며 침대위에 남긴

    메모로 보아 평소 자신이 가족처럼 아끼던 애완견을 동네 초등학교 학생들이 유괴하여 죽인 데에

    앙심을 품고 이 같은 짓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A씨는 거실에서는 희생자들의 가족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성능 망원경과 집음기 장비 일체가 발견되었습니다.

    경찰은 아직 범인이 왜 당사지인 학생들이 아닌 그의 가족들을 살해했는지에 대해선

    명확한 입장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JBS 윤성희 기자였습니다.”

    크리스마스 아침이 밝았다.

    알람시계소리가 울리자 동훈은 자리에 누운 채 기지개를 늘어지게 켰다.

    툭. 무언가가 동훈의 손에 닿았다.

    “앗! 이건 건담변신세트잖아? 엄마! 아빠! 이것 좀 봐! 산타할아버지는 진짜로 있었어!”

    동훈은 선물을 품에 안고 거실로 달려 나가다가 뭔가에 미끄러져 나뒹굴었다.

    바닥에는 피로 물들어서 온통 붉게 변해버린 산타클로스 가운과 장갑이 널부러져 있었다.

    건담변신셋트 위에 붙어있는 피 묻은 메모지 한 장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새해에는 소중한 것을 잃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생각할 줄 아는 동훈이가 되기를 바라며..”

    -산타클로스가-